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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롤드컵] 이제 한번의 패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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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패배가 나오고 있다. 어제 DRX의 패배에 이어 오늘 젠지마저 주사위팀 프나틱의 고점에 당한 것일까.

중요한 건 패배가 나온 시점 이후일 것이다. 패배를 극복하는 여러 방법들이 발휘되야 할 때이다.

여러분은 패배 앞에, 아픔 뒤에 어떠한 결정들을 내리는가.

주먹을 치고 분해하는 편인가, 훌훌 털어버리고 여행이라도 떠나려 하는가.

오늘 젠지에게 패배를 안긴 프나틱은 도데체 언젠적 팀인가. 작은 화면으로 보이는 선수 면면은 롤 교과서가 있다면 소개될 거 같은

그야말로 고인물들 아닌가. 단순히 '고점'이 터진날 운도 없게 걸려든 것인가. 솔랭하듯 경기하는 프나틱에게 패하는건 더 아프다.

그러나 무엇에 쫓기듯 괴로움으로만 가득찬 패배에는 어떠한 희망도 배우지 못한다. 혹자들은 아픔에서 더 큰 성장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건 일부부만 맞는 표현이다. 아픔을 기분좋게 받아들이고 추진하는 에너지로 사용할 때 성장이 있는 것이지 아픈 것 자체 만으로는

두려움과 소극성만 성장시킬 뿐이다.

최고를 지향하는 사람은 한 점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그래야만 경쟁에서 이길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패배마저 즐기려는 '유쾌한' 에너지들은 경쟁심에 불타는 '절박함'들을 머쓱하게 한다.

왜 한국 팀들은 UOL팀처럼 세계최강을 상대로 객기한번 부릴 용기가 없던가, 숙연해질 만큼 결연했던 UOL팀의 저항정신을 국내 해설과

캐스터는 낄낄대면 조롱으로 일관하다 언제나 그렇듯 태세전환하며 인정해버린다. 이것이 어쩌면 도전하는 이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태도일까. 그래서 기대를 받는 소위 '국가대표'들은 두려움에 가득차서, 거짓된 자신감으로 '할 수 있다'만을 외쳐대는가.

흔히들, 롤겜을 할 때 '빡겜모드', '즐겜모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사실 이기고 싶은 마음에 게임하는 것은 똑같다. 그럼 무엇이 다른가.

그냥 아무픽이나 하고 마구잡이로 던지면 즐겜인가? 할 것만 하고 나몰라라 겜종하는게 즐겜인가.

나는 세 번의 유쾌한 패배를 기억한다. 진정한 즐겜의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본다는 의미로 소개해 볼까 한다.

1. 패자의 품격 - 랄스 비스도르프

올림픽 최초의 펜싱 금메달을 딴 김영호 선수는 당시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의 랄스 비스도르프를 상대로 14대11까지 앞서다가 막판 3점을 내리 내주면서 위기에 몰렸지만 마지막 한 점을 침착하게 잡아내면서 금메달을 차지한다. 패자 임에도 불구하고, 시상대에서의 주인공은 단연 그였다. 금메달을 딴 김영호가 펑펑 울고 있는 동안, 은메달을 딴 패자 독일 선수는 너무나 기뻐하며, 가족과 포옹을 나누었다. 그것도 모자라 시상대에서 김영호를 번쩍 들어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려줬고, 그런 모습이 국내에도 감동과 함께 짙은 여운을 남겨줬다.

2. 투혼의 미소 - 박태환

다들 기억할 것이다. 2012 런던 올림픽은 어지간히 한국 선수들에게 불운했던 올림픽이다. 유도 조진호가, 펜싱 신아람, 그리고 수영 박태환까지.

그런 말도 안되는 억울함이 이어지나 국민들은 스트레스가 극에 치닫고 있었고, 그것이 국민스타 박태환에게까지 이어지자 폭발해 버린 것이다.

출발 판정 오심으로 대기 타다가 결선을 위한 컨디션 관리에 실패한 박태환은 정말 패닉 그 자체였을 것이다. 어떻게 준비한 올림픽인데, 국민들은 또 얼마나 부담을 주는가. 4년전 금메달 따고 압구정동에서 플렉스 한번 했다가 욕도 뒤지게 먹었다. 모든 걸 던져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결승 레이스에서 투혼을 발휘했고 차세대 수영스타 쑨양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한다.

우린 다 울먹했다. 고맙고 미안했다. 지켜주지 못했고, 어지간히 부담만 줬었다. 그런 그가 그토록 어려운 역경을 뚫고 다시 해낸 것이다.

우린 이 날의 패배를 승리보다 값진 투혼으로 기억한다.

3. 여왕의 플렉스 - 김연아

소치 동계올림픽은 러시아가 어떤 나라인지를 보여 준 쓰레기 올림픽이었다. 아니, 어쩌면 올림픽이 어떤 무대인지를 보여주는 치욕적인 대회였는지도 모른다. 올림픽 직전까지 모든 대회에서 세계 7위 이상을 해본 적이 없는 자국의 소트니코바가 2연패를 노리는 무적의 김연아를 그것도 김연아가 어떠한 실수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푸틴버프로 금메달을 빼앗아 가버린 것이다. 당시, 해설을 하던 레전드 해밀턴은 온갖 분노를 쏟아 냈고, 김연아 하면 질투에 눈이먼 일본 팬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했다. 결과과 나온 직후 한국 언론은 들끓었고, 댓글창은 러시아와 전쟁까지 불사할 기세였다.

협회는 제소를 결정했고, 여왕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온 국민이 나서고 있었다. 그 때.

김연아는 인터뷰에서 딱 한마디만 했다.

'이제 올림픽이 끝나서 너무 후련해요. 이제 맘껏 쉴 수 있어서 좋아요.'

흔들리는 그녀의 눈빛엔 아쉬움도 짙게 배어났다. 그러나 우린 그녀의 이 말 한마디에 마음이 녹아내리며 이제 그녀를 놓아줘야 겠다는 생각을 모두가 함께 했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 간절함으로 모든 걸 걸었던 그 순간이 패배로 남게되는 때. 우린 아주 큰 절망을 느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승자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어떤 사람들은 패배를 알면서도 또다른 승리를 위해 달렸고, 어떤 사람들은 패배보다 값진 '완성' 앞에 미소지었다.

후회없이 모든 것을 던지고, 결과가 어떻든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자신을 위로하는 이것이 진정한 '즐겜'의 의미이고 그래야 한다.

오늘 젠지 선수들 표정이 너무 안좋아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지 한 때 운동 좀 해본 아저씨로서 조금은 공감이 간다.

단순히 그냥 즐기라는 말은 아무런 위로도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다. 그걸 할 수만 있으면 누구나 즐기고 싶지 않겠는가.

그보다는 패배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그 패배가 나에게 주는 다른 의미들에 집중해 보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고, 비로소 즐길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된다.

1등만을 위해, 승리만을 위해 달리지 말고, 스스로의 인생을 위해 달리자.

그것이 더 오래, 더 새롭게, 더 즐겁게 게임을 대하게 할 것이다. 마치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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