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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할로윈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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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은 1년을 열 달로 정했던 고대 켈트족이 한 해의 마지막 날(10월 31일) 가지던 행사에서 유래한다.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빌면서 악령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이 유령으로 보이는 복장을 하였던 풍습이 축제로 발전되었다.

 

 

할로윈을 상징하는 호박

 

국내 할로윈 파티는 2000년대 영어학원에서 처음 시작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귀신분장 놀이를 하고 사탕과 간식을 나눠주는 행사를 통해 확산되다 이제 젊은 세대의 놀이문화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28일 방역당국이 핼러윈을 전후해 이태원, 홍대, 강남 등 번화가에 집중 단속을 예고하자 이 지역의 대형 클럽들이 할로윈 기간 휴업을 결정했다. 하지만 클럽 단속에 대한 풍선 효과로 주점 등에 젊은이들이 모여 할로윈을 즐길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올 5월 우리는 이태원클럽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상사태를 경험했다. 다가오는 할로윈데이, 철저한 방역수칙을 준수해 집단감염을 최소화해야 한다.

 

할로윈 축제 - 이태원거리

 

굳이 이슬람권이 아니더라도, 크리스마스도 관심이 없거나 조용하게 넘어가는 국가가 굉장히 많다.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한국, 일본, 홍콩, 싱가폴 정도만이 대대적인 크리스마스 파티에 열을 올리고 기타 국가에서는 서양 전통 명절 정도로 취급하고 젊은이들 대상으로만 번화가에서 이벤트를 벌이는 정도이다.

 

한류가 세계를 뒤덮고, 특히 동남아시아에선 한류의 선호도가 90%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금, 오히려 한국은

미국의 문화에 빠져 그 '세련됨'과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왜일까.

 

이정도면 할로윈은 이미 사라졌다

 

2015년 미국의 한 조사기관에서 전세계 도시와 미국의 주를 포함하여 가장 아메리칸 스탠다드에 적합한 지역을 분석한 적이 있다. 여기에 서울이 무려 36위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는 미국의 모든 주를 포함하고도 얻은 수치이다.

 

미국은 영화, 드라마, 팝이라는 20세기 이후 미디어 콘텐츠 분야를 전세계에 공급하고 이를 통해 '아메리칸

스탠다드'를 주입하는 데 성공한다. 이는 단순히 미국의 콘텐츠에 대한 선호도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미국인처럼 브런치를 먹고, 미국인처럼 패션을 입고, 힙합을 들으며 공원에서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모든 아메리칸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한류는 삼성전자와 김연아 박태환, 그리고 손흥민과 류현진을 합하고도 모자라는 한국 대표상품이며 이것은 인류역사상 유래가 없는 문화적 흐름이기도 하다. 작은 나라, 영향력이 적은 국가의 문화 상품이 세계를 지배하는 초유의 역사적 사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한류가 미국의 콘텐츠가 세계 라이프스타일을 지배했듯이, 세계인의 생활 속에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을 경우 흥미로운 이중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한국을 알아갈수록, 미국과 닮아있고, 한류에 빠져들수록 결국 미국 문화의 아류에 빠져든다는 점 말이다.

 

한국은 유독 문화적으로 탈아시아를 지향해왔고, 이는 미국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가이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뉴스를 봐도 CNN을 한국 언론보다 더 신빙성있게 믿고 보아왔고, 뮤직차트에는 월드차트가 처박혀있고 오직 미국 팝송만이 한국 노래들과 경쟁한다. 극장에 가봐도 허리우드 영화 일색이며, 코스트코에는 즐거운 비명이 넘쳐난다.

 

나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설명하고 싶을 뿐, 보수적 관점에서 꼰대소리를 하고 싶진 않다.

김대중 정부에서 일본 문화 개방을 시도할 때, 얼마나 많은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는지 기억한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과 일본의 문화 경쟁력을 비교해 보면, 그 때의 결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도 명확하다.

 

일본은 여전히 한류열풍이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언론에서 할로윈 파티를 우려하고 있다. 이는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지, 할로윈 파티를 비하하고 미국 문화에 쩔은 젊은이들을 하위문화로 평가절하시켜 요즘 'XX들' 이라고 매도하는 시도들은

시대 흐름 파악을 매우 잘못하는 그야말로 '꼰대'짓일 것이다.

 

 

할로윈에 노출을 더한 한류의 해석

 

일본이 탈아시아를 선언하며 공업을 일으켜 지금의 선진국의 발판을 만든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선진 기술을 받아들여 단순히 모방만 하지 않고, 그들의 창의성과 노력을 더해 세계 최고의 공산품을 생산하여 한 때,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을 이룬 사실을 기억한다.

 

한국은 미국의 문화를 오랜동안 흡수해왔고, 이제 미국 문화를 자유자재로 소화시킨 새로운 세대들이 마치 자신들의 감성으로 글로벌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고, IT 플랫폼의 영향력과 결합해 세계로 확산시키고 있다.

국적도 없고, 자존심도 없냐고 지탄받던 젊은이들의 흉내내기, 변형하기 문화가 새로운 문화 환경에서 필요한 경쟁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부 눈을 찌뿌리게 하는 상술과 과도한 자기과시로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들이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코로나 시국에 이런 집합적 이벤트가 과연 적절한가 하는 우려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건, '불편함'에 대한 관용도가 그 사회의 '가능성'의 잣대가 된다는 점이다.

 

나는 제언한다. 모방은 창조의 필요조건이다. 미국 문화가 그 시작점이었으면 한다. 유럽, 인도, 중국,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모든 문화권의 다양성을 흡수하여 한국의 문화 경쟁력이 더 압도적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나는 한국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KOREA STANDARD라는 설레는 현상으로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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